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폐허가 된 지구에서 희망을 찾는 전사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 서사일지 모른다. 하지만 약속의 땅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너무 강한 악당들과 싸워야 한다. 주인공은 여성이다. 악당들은 대체로 남성들이다. 폐허의 시대가 더 가까워질 것만 같은 이 엄청난 기후위기 시대에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시리즈는 더욱 더 긴박한 현실감을 갖고 우리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퓨리오사 프리퀄, 15년 간의 성장 드라마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시리즈는 기후위기와 핵전쟁 등으로 지구가 폐허가 된 지 45년이 지난 시기를 그린 연작이다. 1979년 첫 작품이 나온 이후 다섯 번째 영화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다. 이제 80세가 된 조지 밀러 감독은 평생에 걸친 매드맥스 시리즈를 통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SF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나온 지 9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당시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했던 퓨리오사의 프리퀄이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성장영화이기도 하다는 뜻.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2박3일 동안의 질주 액션을 그렸다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15년에 걸친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원래 디에이징 기술을 통해 샤를리즈 테론을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으나 훨씬 어린 나이를 표현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해 안야 테일러조이를 캐스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작의 묻지마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다소 실망한 듯한 반응도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장기인 15년의 기간을 5부로 나누어 만든 2시간30분짜리 영화를 어찌 액션만으로 채울 수 있을까? 산전수전을 다 겪고 전사 중의 전사로 성장한 전작의 완성된 퓨리오사 샤를리즈 테론과 열 살부터 시작해 15년간 단련되며 성장해 가는 안야 테일러조이를 단순비교하는 것도 무리다. 안야 테일러조이의 연기는 다른 차원에서 매우 탁월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커다란 눈망울과 다양한 표정으로 전사로 성장해가는 변화 과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복수와 희망의 대서사시
영화는 어린 퓨리오사가 풍요의 땅, 녹색의 땅 언저리에서 복숭아처럼 생긴 과일을 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곳에 침입한 바이크족을 발견한다. 바이크족이 악당 디멘투스 일당에게 이곳 풍요의 땅 위치를 알려주면 고향이 쑥대밭이 될지도 모른다. 전사의 품성을 가진 어린 퓨리오사는 홀로 이들을 막으려 하다가 납치된다. 오토바이에 묶여 끌려가는 퓨리오사 그리고 이 바이크족을 뒤쫓는 퓨리오사의 어머니 바사의 추격전. 영화는 광활한 사막 위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로우 앵글로 찍은 바사의 스나이퍼 신은 조저 밀러 감독의 현장감 있는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결국 퓨오리사는 바이크족 두목 디멘투스 앞에 끌려간다. 퓨오리사의 운명은 어떤 여정을 밟게 될까.
유목민 바이크족 악당 디멘투스는 물과 식량이 풍부한 정주민 시타델을 찾아낸다. 하지만 시타델의 임모탄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조금의 식량과 물을 더 얻는 대신 퓨리오사를 임모탄에게 넘기고 퓨리오사는 임모탄의 후처가 된다. 이후 퓨리오사는 그곳을 탈출해 남장을 하고 전사로 성장한다.
이 영화의 세계관은 희망을 둘러싼 세 관점이다. 퓨리오사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심과 녹색의 땅에 돌아가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희망을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디멘투스는 희망 따위를 버린 지 오래다. 식량과 물과 무기를 위해 사막을 누비며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인물이다. 시타델 왕국의 임모탄은 가짜 희망을 퍼뜨리는 인물이다. 그는 부족들에게 잔인한 희생을 강요하면서 사후세계인 발할라에 대한 희망을 주입한다. 죽으면 좋은 세상에 간다는 가짜 희망으로 왕국을 다스리는 것이다.
폐허의 시대에 퓨리오사가 가진 복수와 희망의 서사. 영화의 맨 앞과 맨 뒤에 나오는 복숭아 같은 과일은 최악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조지 밀러의 세계관을 잘 드러낸다. 거기엔 많은 대사가 필요하지 않다. 원래 정보가 많으면 서사가 죽는 법이다. 정보 즉 대사를 생략하고 삶과 행동으로 희망의 서사를 되살리는 것. 그것이 이 단순한 액션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이유다.
여전히 독창적이고 화끈한 액션
그렇다고 퓨리오사가 완전히 혼자인 것은 아니다. 에너지와 무기 수송 책임자이자 최고의 전사 잭은 퓨리오사의 탈출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 퓨리오사도 처음엔 무척 경계하지만 그의 진심을 알아채고 약속의 땅에 함께 가기로 마음먹는다.
이 작품은 프리퀄이기 때문에 전작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먼저 보고 보는 것이 좋다. 전작에서 팔 잘린 퓨리오사가 나오는데 그 작품에서는 그녀가 왜 팔이 잘리게 됐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이 작품은 전작이 만들어지기 전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니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잘 돼서 거기에 맞는 프리퀄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작품 시나리오를 먼저 완성했지만 사정상 미뤄졌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야 비로소 퓨리오사의 팔이 왜 잘렸는지, 전작에서 퓨리오사와 동행하던 미모의 여성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조지 밀러 특유의 질주 액션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전작보다 액션 비중이 적다고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작품의 액션은 전적으로 퓨리오사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디멘투스와 임모탄의 대결 액션 등이 과감히 생략된다. 그 점이 놀랍다. 감독이 영화를 완전히 통제하면서 놀랍도록 창의적인 액션을 결합시켜 낸 것이다. 가령 퓨리오사의 팔이 잘린 뒤 그녀가 타는 차는 바퀴 하나가 없는 자동차다. 로저 밀러는 이처럼 자동차나 바이크에 인격을 부여하고 사람을 기계와 혼합시키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88호(2024.07)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