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자유로운가.
자신도 모르게 정해진 관습과 틀에 갇혀 살고 있지는 않은가.
체호프의 <상자 속의 사나이>를 읽고 나면
나는 어떤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안톤 체호프는 ‘현대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불린다. 체호프는 1880년대부터 죽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단편을 썼다.
따라서 독자는 대략 이 기간에 단편이란 형식이 일정한 틀을 갖췄겠구나, 하고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 소설이라고 하면 대개 장편소설을 뜻했다.
중편은 소설(novel)에 축소형 어미 ‘a’를 붙인 ‘노벨라(novella)’라고 불렸다. 완성되지 못한 소설 취급을 받은 셈이다.
단편 역시 재미용 소품, 콩트와 동일시됐다.
단편소설이 그 자체로 예술성과 깊이를 지닌 독립된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체호프 이후부터다.
그래서 현대의 뛰어난 단편 작가를 이렇게 수식하곤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의 체호프’, 존 치버는 ‘교외의 체호프’ 등.
체호프는 짧은 분량의 단편에 어떻게 예술성과 깊이를 담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을까?
그 비밀을 체호프의 연작 단편 <상자 속의 사나이>와 <산딸기>를 통해 살펴보자.
상자 속의 사나이, 벨리코프
<상자 속의 사나이>는 사냥 여행 중인 두 인물, 젊은 교사 부르킨과 나이 지긋한 수의사 이반 이바니치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밤이 되어 시골 촌장댁 헛간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화제는 시골 사람들의 편협한 삶이다.
예를 들어 집주인인 촌장의 아내만 해도 원래 영리한 여자였다는데
평생 마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 요즘은 밤에 마을을 배회하는 등 이상해졌다는 얘기들이다.
이에 부르킨은 마치 조개나 달팽이처럼 “자기 껍질 속으로 기어들려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며
자기 마을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준다. 이게 ‘상자 속의 사나이’ 이야기다.
벨리코프라는 이름의 선생이 ‘상자 속의 사나이’다. 모든 걸 상자 속에 집어넣듯 행동하고 생각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우산은 우산집에, 시계는 시계집에 넣는 것은 물론,
외투를 입을 때도 깃을 바짝 세워 얼굴을 상자 속에 집어넣은 것처럼 다닌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그의 사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인데,
벨리코프는 자신의 생각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마저 상자 속에 넣고 싶어한다.
벨리코프는 ‘하지 말라’는 금기로 가득 찬 상부의 명령서나 신문 기사만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의 ‘상자’였다.
본인만 그랬다면 상관없었겠지만 남들이 규칙을 어기거나 일탈하는 모습도 견디지 못한 그는
어느새 의무와 금지의 화신처럼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