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닦이 알바의 사회적 의의를 생각하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화자의 연속된 고생담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화자는 파리에서는 접시닦이 알바를 하고 런던에서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이는 오웰의 실제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며칠씩 굶은 이야기,
43도 넘게 푹푹 찌는 호텔 지하층의 식당에서 14시간씩 접시를 닦은 이야기 등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생담 속에서 눈길을 끄는 건 작가의 태도다.
작품 속에서 오웰은 신세를 한탄하거나 마음속 깊이 절망하거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의 고생담을 마치 보고서를 작성하듯 정직하고 사실적인 문체로 풀어놓고, 심지어 그 사이사이 유머를 집어넣는다.
덕분에 독자는 우울함에 압도되어버리는 대신 화자가 처한 상황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당시의 ‘극한 알바’ 에피소드들을 잘 풀어낸 것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지만,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화자가 자신의 고생담을 ‘리뷰’하는 대목이다.
22장에서 화자는 파리의 접시닦이 생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나는 파리의 접시닦이 생활에 대해 내 의견을 피력하려고 한다.
현대의 대도시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지하의 더운 굴속에서
온종일 접시나 닦으며 깨어 있는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이한 노릇이다.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왜 이런 생활이 지속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어떤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며, 누가 그것이 계속되기를 원하는지, 왜 그러는지 하는 문제이다.
나는 단순히 반항적인 게으름뱅이의 태도를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접시닦이 생활의 사회적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75쪽)
이 대목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앞 장까지 호텔에서 접시닦이 알바를 하면서 고생한 에피소드를
속도감 있게 연이어 풀어놓다가 여기서 문체가 싹 바뀌기 때문이다. 어떤 문체로? 바로 신문의 논설 문체로.
“지금까지 내 극한 알바 경험을 실컷 얘기했는데, 재밌었나요? 그럼 이제 그 경험에 대한 내 의견을 피력해보겠습니다”라는 태도다.
이처럼 조지 오웰은 자기가 겪은 어떤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그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는 작가다.
그런데 그 의견이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형성된 의견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에피소드 자체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오웰은 그걸 그냥 개인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사회적인 맥락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접시닦이 생활의 사회적 의의를 생각해보겠다”고 선언한다.
‘아… 이 알바 너무 힘들다. 에잇, 그만둬버릴까?’ 정도의 생각에 그치지 않고,
과중한 노동에 미래도 보이지 않는 접시닦이 같은 일이 왜 없어지지 않는지,
사회의 어떤 목적에 기여하는지, 대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일인지 등을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