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인구가 꾸준히 늘어 우리나라 사람 셋 중 한 명은
반려동물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을 통해,
이 지구에서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의 깊이를 더해보자.
비로소 알게 된 나의 인간 중심적인 관점
국내 반려인구 1500만 명 시대. 3명 중 1명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인데, 나도 그중 하나다.
인생의 분기점으로 어떤 ‘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우리 개를 만난 걸 꼽는다.
개와 함께 살게 된 후, 일상은 매 순간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연속이었으며
동시에 내 사고의 한계와 오류를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사례를 들라면 수없이 많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인사로 생각한다.
그런데 개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이,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앞발로 내 시야를 가린다.
심지어 동의도 없이. 나라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게 다가 아니다. 사람끼리는 눈을 바라보며 인사하는 게 예의다.
하지만 개는 이를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모르는 동물이 눈을 빤히 보는 걸 위협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개들이 인사하는 걸 보면 방향을 살짝 틀어 서로 옆구리를 붙이고, 상대의 엉덩이 냄새를 맡는다.
인간이 눈을 마주 보며 손짓(악수)으로 인사한다면, 개는 눈을 피하고 냄새를 맡으며 인사한다.
동물의 언어, 동물의 사고에 대해 생각하다
그런데 인간과 동물 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언어’ 사용에서 비롯된다.
흔히 언어능력은 인간 지적 활동의 토대라고들 한다.
이 책은 ‘언어=이성=사고’의 등식이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17세기 초 프랑스의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동안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과정을 차분히 다룬다.
더불어 확고해 보이는 이 등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동물행동학, 동물인지학 실험 결과를 여럿 소개한다.
아프리카 회색앵무 ‘알렉스’ 실험을 보자(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알렉스의 놀라운 인지능력을 소개하고 있다).
알렉스는 재질과 색이 다른 물체 여러 개를 부리와 혀를 이용해서 만진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모서리가 두 개인 파란색 물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이 물음에 알렉스는 ‘털실’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알렉스는 평생 50개 정도의 사물을 식별했으며 숫자를 1부터 8까지 셀 수 있었고,
부리를 닦을 헝겊을 정중하게 요청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등 고도의 정신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회색앵무 알렉스는 특수훈련을 통해 단어를 이해하고 숫자와 색깔, 모양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알렉스의 예를 보면서 우리는 언어가 곧 사고라는 등식이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다고 회의하게 된다. (28쪽)
개를 길러본 사람은 안다. 동물의 몸짓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의미 있는 언어다.
개는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품을 하고,
남극의 도둑갈매기는 인간을 둥지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인간의 소지품을 물고 달아나 멀리 던져버린다.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들을 무의미한 행동으로 볼 수 있는가?
하물며 종을 넘어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언어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알렉스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동물의 언어가 다만 인간과 다른 형태일 뿐이 아닌지,
그리고 동물의 사고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와 ‘다른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인간이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지적 인간중심 시점을 버리고,
그들과 소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