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문학]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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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공지능을 두고

엄청난 능력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존재,

혹은 종국에는 인간을 지배하거나 몰아낼 존재라고

그리는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많다.

그러나 테드 창은 스스로 학습할 줄 아는 존재를 키우는 건

무엇보다 따뜻한 감정의 교류가 아닐까, 하고

말을 걸어온다.

 

 

테드 창이 그리는 인공지능과의 조우

인공지능은 SF 소설, 영화, 만화 등에서 중요한 소재지만, 그렇다고 인공지능에만 집중하여 본격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마도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컴퓨터 게임, 음성인식, 공장 제어 시스템, 빅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지만

이들은 인간 능력의 일부 측면을 기계나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을 파악하고 사람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테드 창의 중편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은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를 공상이 아닌 현실의 차원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인공지능의 모습을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형태로 개발이 될 거라는, 합리적으로 예상 가능한 수준으로 그려낸다

작가가 인공지능 개발에 있어서 특히 강조하는 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감정적 교류

인공지능과 감정적 교류를 한다니언뜻 들으면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테드 창이 이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작품을 읽어보자.

 


 

가상 세계의 디지털 반려동물, 디지언트

전직 동물 조련사이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인 애나는 스타트업 게임 회사에 취직한다

이 회사는 디지언트(digient)라 불리는, 일종의 디지털 반려동물 게임을 막 개발한 참이다

팬더, 아기호랑이, 침팬지 등의 모습을 한 디지언트는 개 정도의 지능과 학습 능력을 갖추어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디지언트는 프로그래밍된 반응만 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상호 교류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존재다.

애나는 백지 상태의 디지언트에게 최소한의 언어와 지식, 그리고 사회성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한편 애나의 회사 동료 데릭은 디지언트의 외관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맡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이 두 인물의 직업은 디지언트의 특성과 직접 관련이 있다

디지털 반려동물로서 팔릴 만한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성격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딱 봤을 때 귀여운 느낌을 줘야 하니 애나와 데릭은 중요한 일을 맡은 셈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출시된 디지언트는 큰 인기를 끈다

사람들은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대화 결과에 따라 성장하는 귀여운 동물 모습 캐릭터에 열광한다

게임 세계 안에 디지언트 전용 놀이터와 훈련 교습소가 생기고

게임 유저들이 자기 소유 디지언트의 능력을 뽐낼 수 있는 경진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점차 불만도 늘어간다

사람들은 내 디지언트는 다른 디지언트만큼 똑똑하지 않은 것 같다거나

내 말은 통 듣지 않고 온종일 말썽만 부린다며 불만스러워한다

디지언트를 잘 성장시키려면 반려동물을 기를 때처럼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을 쏟아야 하는데

가상의 디지털 존재에게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람들은 점차 디지언트를 난이도가 높은 게임’ ‘부담스러운 게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별 죄책감 없이 디지언트를 실행 정지시키거나 방치한다

반려동물과 달리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생명체도 아니니 구매자 입장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낄 일이 없다

결국 디지언트의 인기는 떨어지고 회사는 3년 만에 사업을 종료하게 된다.

그런데 디지언트와 교감하며 잘 성장시켜온 소수의 사람은 디지언트를 쉽게 정지시키지 못한다

이들은 게임 회사가 사업을 접은 후에도 스스로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해가며 디지언트를 돌보는 한편

폐허가 되어버린 기존의 가상공간 대신 새로운 가상공간으로 디지언트를 이주시키려 갖은 애를 쓴다

시간과 노력,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소수의 사람들도 점점 지쳐간다. 

 

인간과 감정을 나누며 성장하는 귀여운 디지털 반려동물 

앞서 살폈듯 작가는 주인공의 직업을 디자이너동물 조련사로 설정함으로써 디자인감정적 교류라는 두 측면을 강조했다

이는 실제로 게임, 엔터테인먼트, 통신 산업 비즈니스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SNS를 할 때 흔히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다

때로는 몇 마디 말보다 이모티콘 하나가 의사소통에 더욱 효과적일 때가 있다.

 최근에는 이모티콘이 특정 회사가 개발한 캐릭터와 합쳐져 큰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이는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는 가상의 캐릭터가 인간에게 어떤 감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다

물론 아직까지는 디자인적 요소에만 치중되어 있고 인간과 다른 인간의 감정 교류일 뿐

디지털 존재와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감정 교류는 일어나지 않지만 말이다.

현실과는 달리 디지언트는 인간의 언어로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

인간은 디지언트가 하는 말을 통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과 교류하며 어떻게 변화·성장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이다. 디지언트가 성장하는 모습은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실생활에 별 쓸모는 없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처럼, 오랜 시간 노력과 돈을 들여 계속 돌봐주어야 하는 인공지능인 셈이다

이런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인공지능 개발 초기 단계의 실패 사례로 보고 폐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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