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문학] 행복한 왕자, 나이팅게일과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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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누군가 알아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름다운 마음씨도 마찬가지다.

오스카 와일드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마음 그 자체,

자신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숭배하고 추종하는 마음이다.

    

선행은 부질없고 희생은 헛되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중요시하면서도 그에 대해 어느 정도 현실적인 태도를 보인다

작품 속에서 아름다운 마음씨로 선행을 실천한 이들은 

그에 합당한 인정이나 보상을 받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는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빨간 장미가 필요하다는 학생의 한탄을 들은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희생이 그려진다. 그는 한 마리 작은 새에 불과하지만 사랑에 빠진 학생의 고뇌를 이해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심장을 장미나무의 가시에 박고 밤새 노래하여 아름다운 빨간 장미를 피워낸다

학생은 기적과도 같은 행운에 기뻐하며 장미를 들고 달려가지만

소녀는 이미 다른 남자가 보석을 보냈다며 장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학생은 당신은 정말 고마워할 줄을 모르는군요라며 장미꽃을 내던져버린다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희생에는 관심도 없이, 사랑은 어리석은 것이니 이제 공부나 하자는 대학생의 다짐으로 끝나는 결말은 

아름다운 마음씨의 부질없음을 강조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행복한 왕자>도 비슷하다

왕자의 동상과 제비가 힘을 합쳐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람들은 그러한 선행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다만 겉보기에 초라해진 동상과 그 발치에 죽어 있는 제비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동상을 끌어내릴 뿐이다.

    


 

아름다움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에서는 아름다운 마음씨의 부질없음또는 헛된 선행이란 주제가 도드라진다

하지만 내용을 곱씹어볼수록 독자는 아름다운 마음씨는 부질 없다는 감상을 스스로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나이팅게일과 장미><행복한 왕자>를 읽고 주인공의 행동이 부질없고 어리석다고 느끼는 건 

그 행동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적절한 보상을 받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아름다운 마음씨나 선행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선행이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받게 된다면 오히려 그 순수함이 훼손되는 게 아닐까?

이는 오스카 와일드가 추구한 유미주의의 성격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즉 아름다움은 누군가 알아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름다운 마음씨도 마찬가지다

오스카 와일드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마음 그 자체

자신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숭배하고 추종하는 마음이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50(2021.05)에 실린 글입니다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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