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동안의 숨가쁜 삶
심은 밤 동안 태어났다. 그는 차가운 동굴의 돌바닥에 누워 울부짖고 있었다. 맥박이 1분에 1000번 뛰었다. 그는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열에 달뜬 손으로 아기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었다. 삶이라는 이름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차가운 동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며 소설은 시작한다. 아이의 이름은 ‘심(Sim)’. 동굴이 배경이면 원시 시대 이야기일까? 아니다.
이곳은 태양과 아주 가까운 어느 행성이다. 이곳 사람들은 태양 방사능의 영향으로 노화가 아주 빨라졌다. 1분에 1000번을 뛰는 빠른 맥박과 함께 갓난아기 심은 쑥쑥 자란다.
〈서리와 불꽃〉의 배경은 인간 수명이 8일인 세계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유년기가 지나가고 이틀 만에 청소년기가 지나간다.
3~5일째는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성년기다. 6일째가 되면 노인이 되고, 7~8일째에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언뜻 황당하게 보이는 설정이지만 어떤 면에선 현실적이다. 시간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봐도 설득력이 있지만,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보는 인간의 시간감각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여기에 작가는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디테일을 더한다. 이곳 사람들은 원래부터 이 행성에서 살지는 않았다.
서술에 따르면 약 ‘1만 일 전’에 ‘멀리 떨어진 녹색 행성에서 온 금속 씨앗’이 우주를 떠돌다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단다.
1만 일은 지구 시간으로는 30년도 안 되지만, 여기서는 10만 년에 해당한다.
‘멀리 떨어진 녹색 행성’이 지구를 가리키고 ‘금속 씨앗’이 우주선을 가리킨다고 한다면, 동굴인들은 우주 탐사 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 행성에 불시착한 인류의 자손인 셈이다.
이들은 낮의 태양 방사능과 밤의 냉기라는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여 5000세대를 이어 살아왔다. 8일의 수명은 그 적응의 결과다.
8일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이토록 짧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우주의 시각으로 보면 지구인의 수명 80년 또한 의미를 논하기엔 짧은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자신의 세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무엇보다 막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심’을 화자로 설정하고 그가 느끼는 시간 감각에 초점을 둔 것은 신의 한 수다.
독자는 마치 게임 캐릭터에 이입하듯, 8일을 사는 주인공의 숨 가쁜 삶의 속도에 이입하게 된다.
짧은 수명에서 비롯되는 속도감과 초조함은 이 작품의 핵심 요소다. 게임으로 치자면 시간 제한이 있는 셈이다.
시간의 압박 속에서 주인공은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