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어려워.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미술 작품을 만드는 건 더더욱 어려워.’
그런데 정말 미술은 어렵기만 할까?
미술을 너무 고상하게 여기다 보니 자신의 소질과 관점을 스스로 평가절하한 것은 아닐까?
모두에겐 자신만의 소질과 관점이 있고, 그래서 미술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으니 어려워할 이유도 없다.
‘뭐 어때, 나는 이렇게 그리고 싶은데?’ ‘뭐야, 도대체 뭘 그린 거야?’
솔직해도 된다. 아니, 솔직해야 한다! 미술은 솔직함에서 시작되니까!
이 책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고정관념에 기죽지 않고 궁금한 건 무엇이든 솔직하게 질문하는, 미술을 좋아하는 중학생 ‘보라’.
보라의 솔직한 질문에 편견과 권위의식 없는 태도로, 친절하게 대답하는 ‘미술 선생님’.
독자는 보라의 입을 통해 미술 교사인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저자는 교사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대답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드러내게 해주는 미술. 세상과 소통하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미술.
그런 미술의 세계 속으로 함께, 깊숙이 들어가 보자!
피터르 몬드리안 ‘붉은 나무’, 1908~10년. 캔버스에 유채, 70×90cm, 헤이그 시립 현대 미술관.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똑같다는 개념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아. … 똑같다고 말하려면 실제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잖아.
그렇지만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명료하지 않지.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진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를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수학 공식에서나 가능한 일 아닐까?
현미경으로 단풍잎을 들여다보거나 망원경으로 달을 보면 맨눈으로 볼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이고,
똑같은 사과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색과 형태가 달라지니까.
인간이 보는 세상과 고양이가 보는 세상은 다르고 ‘내’가 보는 세상과 ‘네’가 보는 세상도 다르니까.
그러니 모든 ‘바라봄’은 모두 다르고, 독창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 작품을 그저 감상할 때와는 조금 다르게 느끼게 된다.
도무지 무엇을 그린 건지 알기 어려웠던 그림 속에서 미술가가 느낀 세상의 모습이 조금씩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피터르 몬드리안 ‘색면들과 회색선의 구성’, 1918년. 캔버스에 유채, 49×60.5cm, 개인 소장.
피터르 몬드리안의 그림들을 보자.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단순해지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중에는 ‘이제 더는 자연의 모습을 그렸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런 감상 또한 솔직한 감상이니까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과연 그림을 둘러싼 배경지식을 알게 된 뒤에도 작품이 똑같이 느껴질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몬드리안은 자연의 구조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치밀하게 그 형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미술 작업을 시작했다고 해.
그런 다음 자연의 형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담긴 가장 기본적인 조형의 구조만을 남기는 것이 그의 추상화 과정이었지.”
배경 설명을 듣고 나니 몬드리안의 단순한 작품에서 또 다른 형상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똑같은 나무도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그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미술이 다양하고 재밌을 수 있는 이유 아닐까?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44호(2020.11)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