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읽은 우리는
베짱이의 어리석음을 손가락질하며 개미의 부지런함을 본받고자 한다.
그런데 체호프의 <베짱이>는 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베짱이인 올가다.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남편 드이모프와
베짱이처럼 파티와 예술에 빠져 사는 아내 올가의 이야기.
체호프는 올가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까?
어느 여름, 올가는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천재 화가 랴보프스키와 사랑에 빠진다.
장장 반년 동안이나 이어진 외도를 두 사람의 친구들과 남편 드이모프는 물론 드이모프의 동료 의사들까지 모두 알게 되었을 무렵, 외도는 끝이 난다.
올가는 맹세하며 돌아온다. ‘그래, 이제는 드이모프와 아름다운 사랑을 하며 사는 거야!’
그날 올가를 맞이한 건 드이모프의 목소리뿐이다. 꼭 닫힌 방문 안에서 드이모프는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다가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었다며,
상태가 위중하니 동료 의사 코로스텔료프를 데려오라고 올가에게 부탁한다. 이틀 뒤, 드이모프는 죽는다.
겨울이 되어서야 양식이 없음을 깨닫고 후회하는 베짱이처럼, 올가는 드이모프가 죽은 후에야 드이모프의 시신을 앞에 두고 뒤늦은 눈물을 흘린다.
올가의 허영심은 참 어리석기 그지없다. 자기를 헌신적으로 사랑해주는 남편을 두고서 불나방처럼 랴보프스키와의 사랑에 빠져봐야,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라는 걸 올가는 왜 몰랐을까?
그렇지만 <개미와 베짱이>가 그렇듯,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올가 속에서 나를 보기 때문이다.
아마 체호프가 개미가 아닌 ‘베짱이’를 주인공으로 쓴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개미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베짱이가 살아있다.
죽은 드이모프를 앞에 두고 처절하게 울고 있는 올가의 어리석은 모습이 마치 내 자신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후회를 다룬 이 작품은 언뜻 보면 너무 쉬워 별 감흥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개미와 베짱이>처럼 성실하게 살라는 권고를 하고자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43호(2020.10)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