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문제는 아직도 수많은 논쟁을 양산한다.
버틀러는 문학이 이 뜨거운 주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완벽한 모범을 보여준다.”-LA 타임스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혹은 죽는 것만큼 힘든 선택일 때가 있다.
하지만 보잘것없어 보이는 보통 사람들의 발자국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
가혹한 노예제 시대에는 자유를 위해 싸운 영웅만 있지 않았다.
순응을 택하고 살아남은 수많은 흑인의 이야기,
작가는 노예제 시대로 타임 슬립한 현대의 흑인 여성 다나를 앞세워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1970년대를 살아가던 흑인 여성 다나(Dana)는 어느 날 갑자기 1815년으로 타임 슬립한다.
왜 타임 슬립이 일어난 건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이야기 속으로 빨려든다.
재밌게도 소설은 먼저 결론을 내놓는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결론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주인공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팔 하나를 잃는다.
어쩌다 그녀는 팔을 잃었을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타임 슬립은 왜 일어났을까?
소설의 상당 부분은 다나의 ‘노예 생활 적응기’다.
1800년대 초반 미국에 사는 흑인들은 모두 노예였기 때문에 과거로 간 그녀 역시 노예의 삶에 적응해야 한다.
다나는 살아남기 위해 ‘순응’을 택한다
《킨》은 SF 소설이지만, 한편으로는 흑인 여성이 노예제도의 참상을 겪는 과정을 그린 역사 소설, 리얼리즘 소설의 성격도 짙다.
이 작품은 ‘노예 수난 서사’로도 읽힐 수 있는데, 기존 작품과 다른 점은 그들이 얼마나 가혹한 수난을 겪었는지에 강조점이 있지 않고,
이들이 어떻게 상황에 적응하고 순응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다나는 1810년대를 살아가면서 노예제 사회가 엄청나게 폭압적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냈다는 점에 주목한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가혹해도 인간은 의외로 적응하는 한편 부당한 삶의 조건들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다나를 줄곧 괴롭히는 생각이자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소설의 곳곳에서 다나는 자신이 1810년대의 사회에 얼마나 쉽게 적응해버렸는지를 깨닫고 놀란다.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전에는 몰랐어.”
《킨》에서는 흑인 여자 노예로서 택할 수 있는 쉬운, 수월한 선택과 (그 반대편에 있을) 어려운 선택이 지속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그런데 궁금하다. 흑인 노예로서 할 수 있는 쉬운 선택은 과연 뭘까.
이때의 쉬운 선택은 노예제도를 받아들이고(즉 순응하고) 살아남는 것이다.
그 반대의 어려운 선택은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다.
억압과 굴종을 거부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는 것.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수월한’ 선택이라고 한 순응해서 살기는 어떤가? 그 일은 과연 ‘수월’한가?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42호(2020.09)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