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문학] 우연한 빵집

홈페이지 기사 3.png

 

공통의 상처를 논하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공통의 상처를 지니는 일은 흔치 않다. 그렇지만 2014416일에는, 많은 사람이 비슷한 슬픔을 느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태운 배가 가라앉고 있단 소식에 엄청 놀랐다가, 탑승 인원 전원 구조 소식에 안도했다가, 다시 구조 소식이 오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구조하지 못했다. 치솟은 분노와 무력감, 죄책감, 해일처럼 덮친 슬픔.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거대한 상처를 남겨두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와 관련한 작품을 쓰게 되어 세월호 문학이라는 글의 갈래가 생겼다

누군가는 세월호 얘기를 글로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한다. 작가들이 글을 써서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괜히 상처를 더 아프게 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생명력을 얻게 되고 잊히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그래서 자발적으로 뭔가를 쓰고 읽고 토론하면서 공통의 상처를 보듬어간다.

 

   

 

우연한 빵집은 모락모락 구워지는 빵 냄새처럼 포근하게 우리 곁에 다가와 위안을 주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 무대는 학교 근처 골목에 자리한 한 작은 빵집. 장사가 아주 잘 되는 편은 아니지만 단골도 있고, 근처 고등학교 학생들이 드나들며 그럭저럭 입지를 다져온 곳이다

빵집 주인 기호는 세월호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몇 개월 동안 가게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가 장을 봐줄 사람을 구하는 광고를 냈다.

만들기 어렵다는 바게트가 그날따라 잘 구워진 날, 한 학생이 가게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한다

기호는, 바게트도 잘 구워진 재수 좋은 날이니 채용 운도 좋으리라 싶어 즉석에서 고용하기로 한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온 하경역시, 기호처럼 갑작스런 사고로 받은 상처를 추스르는 중이다

둘은 빵을 구우면서 아픔을 보듬어나간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하나둘 빵집으로 찾아오는데.

 

 

 

아픔을 나누고, 보듬고

타인의 상처를 보듬기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난처한 상황에 공감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섣부른 위로가 갖는 해악 탓에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런데 이 빵집에 모여든 사람들은 서로 눈빛만 봐도 상대의 고통을 아는 듯하다. 빵집 주인 기호와 아르바이트생 하경, 한동안 이곳을 자주 드나들던 고등학생 친구들 모두.

늘 명랑하게 웃던 빵집 단골 학생 윤지’,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던 물리 선생이자 기호의 절친한 친구 영훈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 돌아오지 못했다

기호의 빵집이 있는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남은 이들은 이래도 되나, 싶은, 죄책감을 가슴 한편에 두고 일상을 시작한다

빵집 문을 다시 열고, 학교 문도 열린다.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지만 일상을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디딘다.

 


 

한편 하경은 신발 속에 부은 발을 구겨 넣고 비척비척 기호의 빵집을 찾아왔다. 하경이 발의 통증을 감수하면서까지 집에서 먼 이곳을 찾아온 것은 이유는 있었다

하경의 오빠는 군대에서 의문사를 당했는데, 오빠와 댓글을 주고받던 블로그 친구가 자주 말했던 곳이 기호의 빵집이었기 때문이다

기호와 하경, 두 사람의 관계는 꽤 담백하다. 묵묵히 각자의 일을 한다. 기호는 빵을 굽고, 하경은 매장을 관리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뭔가 공통의,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만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가 감돈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기호와 하경은 조금씩 스스로의 아픔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은근하고도 따뜻한 기호와 하경의 관계를 보면서 지지하다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확연하게 드러내놓고 다른 사람을 응원하는 것이 아닌, 가만히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봐주는 고요한 지지. 빵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며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는 기호와 하경

 오븐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빵 냄새는 담담히 상처를 고백하는 이들을 감싸 안는다.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39(2020.06)에 실린 글입니다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록으로
채널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