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교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학교는 어디일까?
먼 옛날 평민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학교의 역사를 살펴보자!
~삼국시대~
이 시기 삼국 중 교육기관에 대한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는 국가는 고구려뿐이다.
고구려
372년 (소수림왕 2년) | 태학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학교. 관리를 양성하는 국립학교였다.
⚫배우는 내용: 유학과 문학, 무예 등.
⚫학생: 귀족 집안의 자제.
427년 추정 (장수왕 15년) | 경당
중요 거점 도시와 지방 촌락 등 다양한 곳에 있던 학교.
⚫배우는 내용: 유학 경전, 활쏘기. 독서.
⚫학생: 청소년 대상으로 평민도 입학 가능.
>> 백제
? | 태학…?
백제의 교육기관에 대한 기록은 정확히 남아있지 않다.
다만 오경박사 제도(《역경》《시경》《서경》《예기》《춘추》 5경에 통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관직)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유교 경서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이 있었을 거라 추측된다.
오경박사 제도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인데, 중국의 오경 교육기관의 이름이 태학이므로 백제의 교육기관 명칭도 태학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2013년 중국 시안(당나라 수도)에서 발굴된 진법자 묘지명 덮개물에서 묘주를 ‘백제에서 태학의 정正’을 지냈다고 소개해 백제 태학설이 기정사실화됐다.
~통일신라·발해 시대~
신라의 교육기관을 명시한 글은 통일신라 이후에 등장한다.
신라
682년 (신문왕 2년) | 국학
관리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으로 경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배우는 내용: 유학. 《논어》, 《시경》, 《주역》 등을 가르쳤다.
⚫학생: 육두품 집안 15~30세 학생들이 주로 진학했다.
⚫특징: 학습 기한은 딱 9년. 9년이 넘어가면 가망이 보이는 학생만 다닐 수 있었고 나머지는 퇴학당했다.
발해
737~793년 (문왕 재위기간 내) | 주자감
⚫배우는 내용: 유학.
⚫학생: 왕족과 귀족 자제.
⚫특징: 당나라 학생들도 상당수 재학하였다고 한다.
~고려~
992년 추정 (성종 11년) | 국자감
고려는 건국 직후부터 학교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992년 성종의 명 이후 학교 제도를 개편,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국자감이 개경에 설립되었다.
⚫배우는 내용: 경사육학(京師六學)이라 하여 국자학(유학)·태학(유학)·사문학(유학)·율학(법학)·서학(회화)·산학(산수) 등으로 분과 제도를 두었는데 신분에 따라 입학할 수 있는 과가 달랐다. 국자학과 태학과 사문학의 차이? 3품 이상 귀족이 국자학, 5품 이상이 태학, 7품 이상이 사문학을 배웠다.
⚫학생: 왕실과 귀족 자제, 아주 가끔 매우 영특한 서민.
⚫특징: 국자감은 몇 번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중 1308년(충렬왕 34년) 변경된 ‘성균관’이라는 명칭이 조선까지 내려왔다.
1127년 (인종 5년) | 향학
인종의 명령으로 지방 여러 곳에 설립되어 국자감 역할을 하던 학교.
⚫배우는 내용: 유학.
⚫학생: 지방 고위직 자제. 서인에게도 입학자격을 주었다.
⚫특징: 조선의 향교로 명맥이 이어진다.
1261년 (원종 2년) | 동서학당
개경의 동쪽과 서쪽에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국자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배우는 내용: 유학, 특히 주자학.
⚫학생: 귀족 자제.
⚫특징: 나중에 개경 동·서·남·북·중앙 5군데로 확장되어 5부학당이 되었다. 이 체계는 조선시대에도 유지됐고, 북부학당이 폐지되며 4부학당으로 자리 잡았다.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39호(2020.06)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