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라의 말은 왜 죽었을까?
<헨드라 바이러스 사건일지>
*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1부 ‘창백한 말’을 재구성·각색했습니다.
때는 1994년 9월, 오스트레일리아 헨드라 지역에서 말들 사이에 원인불명의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교양이, 탐정이죠.”
명탐정 교양이가 오스트레일리아 헨드라 지역에 머물던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교양이는 의문의 죽음이 발생한 첫 번째 장소로 발길을 옮기는데….
교양이의 사건일지를 유레카가 비밀리에 입수했다.
1994년 9월 8일
#1 “건강하던 ‘연속극’이 갑자기 죽다니?”
어제는 맥주를 진탕 마시고 피곤한 탓에 곯아떨어졌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마을이 왠지 어수선하다.
간밤에 이웃집 조련사 빅 레일 씨네 마구간의 말이 한 마리 죽었다.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듯하지만, 어딘가 안 좋은 느낌이 와.
헨드라는 경마업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어젯밤 죽었다는 암말은 ‘연속극’이다.
은퇴 후 새끼 생산을 위해 사육 중이었다는데, 마침 빅 레일 씨가 지나가는 걸 붙잡아 말을 걸었다.
“빅 레일 씨, 연속극에게 지병이 있던 건 아닙니까? 화물차에 실려 가는 꼴을 보니 거품을 물고 있던데요.”
빅 레일 씨는 예민해 보였지만 차분히 설명을 해줬다.
“며칠 전엔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 줄 알았네. 그런데 별안간 입술과 눈꺼풀, 턱이 부어오르더니 어제부터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먹지도 않더군.
어제 저녁에 수의사 피터 레이드가 항생제를 놓아주었지만… 새벽 4시에 갑자기 마구간을 뛰쳐나가더니 다리가 찢어져 뼈가 드러날 정도로 쓰러지고….
결국 벽돌을 들이박고 숨졌어, 제기랄. 건강하던 녀석인데, 참.”
항상 단정히 빗어 넘긴 모양을 유지하던 레일 씨의 갈색 머리가 한껏 흐트러져 있다.
레일 씨, 어쩌면 전염병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라는 질문은 하지 않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슬쩍 살펴본 마구간은 그리 넓지 않아서 연속극이 죽는 모습을 다른 말들이 생생히 지켜봤을 것이다.
1994년 9월 15일
#2 “역시 전염병이었군. 원인이 대체 뭐야?”
어수선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말들이 도미노처럼 하나 둘 쓰러졌다. 좁은 마구간이 퍼뜩 떠올랐다. 역시 전염병이었어.
처음엔 얼굴이 붓고 눈이 충혈 되었다가, 점차 호흡곤란과 경련을 일으키며 걷지 못하는 기이한 병이 마구간을 휩쓸었다.
코와 입에서 피거품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콘크리트 벽을 머리로 들이받는 녀석도 있었다.
레일 씨네 집 앞은 생기를 잃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바퀴 달린 쓰레기통이 죽 늘어섰는데 말 대가리와 다리들이….
“처음엔 뱀한테 물리거나 독초를 먹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참나,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일이 다 있네, 그래.”
뱀에게 물리거나 독초를 먹었다면 이렇게 모든 말이 전염되었을 리 없다. 며칠 사이에 열두 마리가 죽더니, 어제는 12시간 동안 일곱 마리 말이 죽음을 맞았다.
“5살짜리 거세마 하나를 살려보려고 북쪽 임시 방목지로 보냈는데, 그 녀석도 죽었다는군. 그쪽 수의사가 몸을 뜯어보니까 온몸의 장기에서 출혈이 났다고 하네.”
출혈이라? 사인이 불분명한 죽음만큼, 무서우면서도 탐정의 심리를 자극하는 건 또 없지. 장기에 출혈, 말, 전염병….
*인수공통 바이러스의 사냥
작가는 병원체가 일으키는 감염병이 초원에서 사자가 영양이나 임팔라를 잡아먹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내부에서부터 먹어치울 뿐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동물이 아닌 사람을 공격할까? 병원체는 보통 선호하는 표적이 있지만, 이따금 새로운 표적을 찾아 나선다.
만약 이때 다른 동물의 몸속에 있던 병원체가 사람 몸속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다면, 이를 인수공통감염이라 한다.
인수공통감염병은 보통 여섯 가지 병원체(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원생생물, 프리온, 기생충)에 의해 일어나는데,
이중 가장 빠르게 번식하면서 잡기 힘들고 온갖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 바이러스다.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37호(2020.04)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