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은 장애를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애를 연구하는 모든 학문이 다 장애학인 것은 아니다.
다른 학문과 장애학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네 개의 핵심적인 키워드-사회적·학제적·실천 지향적·해방적-를 제시하는데,
그중에서 장애가 사회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 말의 의미는 다음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특정한 관계란 다름 아닌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이며,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손상을 지닌 무능력한 사람이어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의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이 신체적 현상에 불과한 ‘손상’을 ‘장애’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리가 마비돼 ‘걷지 못하는 것’은 손상이다.
만약 그럴 때 전동휠체어가 있다면 걸을 수는 없더라도 ‘이동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동휠체어로 문턱이나 계단을 오를 수는 없다.
따라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문턱이나 계단 앞에서 ‘이동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한편 손상이 없는 사람도 장애를 경험할 수 있다. 한국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이 한국어밖에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려 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는 아무런 손상도 없는 상태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장애는 손상 그 자체보다 개인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에 훨씬 의존적이다.
즉 장애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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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36호(2020.03)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