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이달의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산재, '사고'가 아닌 '구조'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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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가 일어나는 ‘진짜’ 이유

산재는 201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달라진 인권, 안전 감수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2016년 구의역에서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 군’,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연료공급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씨, 2022년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소스배합기에 몸이 끼어 사망한 이름 모를 청년노동자까지, 젊은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언론에 잇따라 보도되며 산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사람들의 생각도 ‘어쩔 수 없는 사고’에서 ‘막을 수 있었던 사고’, 나아가 ‘앞으로 일어나선 안 되는 사고’로 느리지만 확실히 바뀌어갔다. 2022년 제정된, 경영진에게 노동자 보호의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에 대한 이러한 시민들의 인식 변화를 토대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평균 8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다. 하루 평균 두 명꼴로, 아침에 집을 나선 노동자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중 언론에 보도되는 산재는 극히 일부다. 그마저도 적은 분량과 복잡한 내용 탓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금세 잊히고 만다. 산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고, 그 결과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되었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다은의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그 이유를 ‘구조’에서 찾는다. 단순히 노동자가 부주의해서, 기업이 부도덕해서, 언론이 무신경해서 산재가 일어난 게 아니라, 이들을 그렇게 행동하게끔 만드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 안전한 일터, 더 나은 이야기를 위해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도, 그것이 은폐되는 이유도 ‘구조’에 있다면, 이를 넘어설 방법도 ‘구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영국의 인지공학자 제임스 리즌을 인용한다. 리즌에 따르면 그간 재해 예방 이론은 ‘썩은 사과 찾기’에 초점을 맞췄다. 일터라는 사과 상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노동자나 안전관리자 등 개인이라는 사과를 솎아내는 데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리즌은 반대로 사과 상자라는 ‘구조’를 개선하자고 제안한다. 문제는 왜 사고가 발생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것이 되풀이되는가에 있으며, 사람은 바꿀 수 없어도 그들이 일하는 환경은 충분히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기업은 안전보다 생산을 우선하는 조직이며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문제가 있는 개인을 솎아내는 쪽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업이 안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게끔, 환경 개선에 투자하게끔 설득할 수 있을까? 덴마크의 안전 공학자 에릭 홀나겔은 이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는 기업이 사고가 나는 상황을 줄이기보다 사고가 안 나는 상황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해 건수가 안전의 기준이 되면 산재사고가 일어나도 문제, 일어나지 않아도 문제다. 사고가 없었으므로 안전에 돈을 쓸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일터의 평균적인 안전 수준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한 대처 여부가 기준이 되면 안전에 투자할 근거가 생긴다. 

바뀌어야 하는 ‘구조’는 비단 일터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산재를 알리고 기록하는 ‘구조’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재해가 발생했을 때 근로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직원이 함께 작성하는 ‘재해조사의견서’의 경우, 사고의 기초적인 사실관계는 물론 기술적·관리적 원인까지 짚는 핵심적인 자료임에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사고의 경과와 노사 양측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법원 판결문도 마찬가지다. 판결문 원문은커녕 재판 시 부여되는 사건번호조차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노조나 언론에서 사고의 내용을 알기 어렵다.

지은이의 말처럼 산재는 곧 ‘서사의 싸움’이다. 노동자가 죽은 이유를 면밀히 파헤치고 그 전말을 기록하는 일은 망자를 추모하고 명예를 되찾아주는 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이를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며 기업의 대처는 어떠했는지까지, 산재를 자세하게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는 비로소 산재 너머의 ‘구조’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산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쓰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오랫동안 신문사 기자로서 ‘200자 원고지 3매’라는 틀을 넘어, 보다 깊이 있는 산재 이야기를 쓰고자 고심해온 지은이가 다다른 결론이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85호(2024.04)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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