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버설 디자인? 조금 생소한 개념이다. 사전적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 및 사용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이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설명만로는 이 개념의 사회·윤리적 가치를 알아내기 쉽지 않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면 이해가 조금 쉬워질 듯하다.
장애인을 위해 만든 비스듬한 경계, 이렇게 편할 수가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개념의 토대를 마련한 사람은 영국의 셀윈 골드스미스다. 건축가이며 인권운동가였던 골드스미스는 소아마비 환자였다. 그는 1963년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책을 쓰면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284명의 장애인을 만나 인터뷰했고, 도로 경계석이 횡단보도와 만나는 곳에서 턱을 비스듬히 낮춘 ‘낙차 연석’을 도입했다. 그는 도시 계획에서 경사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도로의 경우 차도는 인도보다 낮고, 둘 사이에는 경계석이 이어져 있다. 하지만 횡단보도와 도로 경계석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그 턱을 비스듬하게 낮췄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보행이 어려운 이들이 쉽게 도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이 방식은 골드스미스가 도입한 것으로, 이후 표준이 되었다.
현재 아파트나 건물 출입문 계단 옆에는 대부분 경사로가 있다. 휠체어 출입을 위한 경사로지만, 우리 모두가 매우 편안하게 사용한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 유모차를 끄는 부모, 롤링 카트를 끄는 배달 직원 등.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은 어떨까? 힘이 달려 문을 열기 버거운 어린아이, 양손에 짐을 든 사람들, 보행기나 휠체어 사용자 모두의 불편함을 해소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창시자, 로널드 메이스
1970~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현실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 특히 공공건물이나 도로를 이용할 때 갖가지 물리적 장벽과 맞닥뜨려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휠체어 사용자는 비장애인처럼 맛집을 골라서 다닐 수 없다. 휠체어가 들어가려면 경사면을 갖춰야 하고, 문의 넓이도 달라야 하며, 공간도 필요해 음식점 출입 자체가 어렵다.
장애인 인권 운동이 시작되면서 1981년 유엔은 장애인 인권 신장을 위해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했다. 우리나라도 그해 장애인 복지법을 만들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등장했다.
이 용어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미국의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다. 메이스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를 다닐 때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공부해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가로 일을 시작한 그는 1973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미국 최초로 건물의 접근성 관련 건축 법규의 초안을 만들었다. 이후 1988년에는 공정주택법 개정안, 1990년에는 건축 등 장애인의 접근성이 보장되는 법률 제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메이스는 ‘Design for all ages and abilities’라는 디자인 철학을 갖게 됐다. ‘나이’와 ‘능력’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제품과 건축을 포함해 모든 공간과 환경에 접근성이 좋게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특히 미국은 1960년대 후반 큰 사회적 문제를 앓고 있었다. 베트남전쟁으로 유례 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에 따른 부상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사회로 복귀시켜야 했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태동한 것이다. 장애인 차별과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권운동에서 시작한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후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이라는 보다 보편적이며 포용적인 철학을 담은 개념으로 발전했다. 현재 유니버설 디자인은 제품, 환경,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등을 디자인할 때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용자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 넓게 확장 중이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85호(2024.04)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