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탑 신화에 대한, 놀라운 문학적 고찰
만약 그 탑을 시나르의 평원에 눕히고 한쪽 끄트머리에서 다른 끄트머리까지 걸어간다면 족히 이틀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탑은 곧추서 있기 때문에 밑동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짐이 없더라도 한달 반이나 걸린다.
작품 속 바빌론의 탑은 거의 다 지어져 하늘에 닿아 있다.
그리하여 엘람이라는 곳에서 평생 살아온 주인공 힐라룸과 광부들은 하늘의 천장을 뚫기 위해 ‘넉달’을 걸려 탑에 오른다.
“하늘의 물에 담긴 저수지 위에 있는 야훼의 주거(住居)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면서.
이 작품의 첫 번째 매력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바빌론 탑과 관련한, 진지하고 과학적이면서 기발하고 놀라운 작가의 상상력이다.
이 거대한 탑에 사람들이 어떻게 깃들어 살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 하늘로 가는 길가에 사는 사람들 얘기, 탑 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 대한 얘기.
이 고도에 사는 탑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아무런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광부들을 향해 따스한 인사를 건넸고, 천장에서의 작업이 잘 풀리도록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들은 축축한 구름 아지랑이 속에서 살았고, 아래에서 올라오거나 위에서 내려오는 폭풍우를 바라보는 데도 익숙했다.
공중에서 작물을 수확했고, 이곳이 인간이 있기에 적절치 않은 곳이라는 두려움도 없었다.
신의 약속도 격려도 받을 수 없었지만, 주민들은 단 한 순간도 의구심을 가지는 법이 없었다.
탑 꼭대기로 향하는 힐라룸 일행은 갖가지 경험을 한다.
태양과 같은 고도에 도달하기도 하고, 태양의 높이를 지나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낮에도 별이 보이고,
떠돌던 별이 떨어져 탑에 와서 박혔다는 얘기도 전해 듣는다. 태양과 구름과 별을 인간이 실감할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내 목적의 이유, 내 일의 가치, 내 생의 의미…
이야기는 이제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인간이 쌓아올린 탑이 하늘의 천장에 닿았다는 것이다!
힐라룸과 광부들은 어느 순간 “하늘로 올라가는 대신, 모든 방향을 향해 끝없이 펼쳐진 텅 빈 평원을”만나게 된다.
이름하여 하늘의 천장. 그들은 마침내“탑의 정상에 선 사내가 손을 뻗치면 거의 닿을 거리”에 도착하였다.
매끄럽고 차가운 백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그 천장은 흠집 하나 없이 평평했다!
넉달 동안 탑을 올라온 일행은 이제 자신들의 해머와 목제 쐐기 등을 펼쳐놓고 하늘을 깰 준비를 하게 됐다.
천장을 앞에 두고 그들은 커다란 의문에 짓눌렸다. 탑은 신에 대한 모독인 걸까?
순수한 목적으로 일해왔는데, 과연 인간은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일까?
인간이 대지를 떠나 살려고 한 게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만약 잘못된 선택이면 과연 신은 인간을 지켜줄까?
이들의 깊은 물음이 조금씩 독자들에게도 전달된다.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이 근원적 물음들이 엉켜 있는 상황에서 광부들은 뜨거운 불로써(화력 채굴법) 이 천장을 깨려고 행동에 나섰다.
차가운 화강암과 뜨거운 불, 무거운 질문과 그 질문을 엎고 움직이는 활달한 행동들.
그러다 마침내 그들의 우려가 현실로 닥친다.
이들의 운명은, 탑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 강력한 스포일러라 작품 읽을 재미를 떨어뜨릴 것 같아, 상황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려 한다.
그저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 있는 한 문장을 옮겨보려 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신과 인간에 대한 얘기로 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천계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의 많은 인간들에게는,
내 목적의 이유, 내 일의 가치, 내 삶의 의미 같은철학적 화두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들렸냐고?
인생 돌아보니 한나절이더라는, 시골 어느 노인의 말을 새겨듣고 싶었달까?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자리, 내가 하는 일 그 자체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32호(2019.11)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