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특집맛보기] 1945년 8월 15일, 그 무렵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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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일 히로시마에, 8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19399월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은 19458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사실상 끝이 났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전쟁이었다. 전쟁 후반기 독일과 일본의 패색(敗色)이 짙어가자 

1945711일 연합군 지도자들이 모인 포츠담 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했지만 일본이 거부했다

그러자 미국은 86일 히로시마에, 8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됐다. 일반인을 학살한 최초의 원자폭탄이었다.

 

‘88일 소련군이 만주와 한반도의 국경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의 승리를 거머쥔 것은 미국과 소련이었다. 미국이 원폭을 투하할 무렵인 88

소련군은 소련 국경과 인접한 만주와 북조선의 국경을 넘어오며 공격을 개시했다

통감부 기관지 <경성일보>에서는 소련군 돌연 월경(越境)/ 불법공격을 개시라는 기사를 톱으로 다뤘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일본 육군대신이 모든 장병에게 풀을 먹고 흙을 깨물면서라도 싸워서 최악의 사태를 타개하자는 최후의 명을 내렸다고 한다.

 

 그날 정오, 라디오에서는 일본 천황의 옥음방송이 흘러나왔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1945814종전조서를 녹음했다. 녹음된 내용은 15일 정오에 라디오를 통해 공표됐다.(옥음방송

그는, 전쟁을 끝내는 것을 승낙한다는 제3자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자신들의 침략으로 전쟁이 발발한 것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종전조서는 일본의 항복선언문에 해당하는 글인데도 어디에서도 패전이나 항복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가해 책임을 부정한 종전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전후 일본에서는 천황의 성스런 결단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히로히토는 수많은 아시아인과 일본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쟁 책임자였건만, 전쟁에서 국민을 구한 위대한 평화주의자로 둔갑했다.

 _일본 국립공문도서관 디지털 아카이브 발췌 정리

 

   

 

 ‘815, 거리에는 함성이 울렸을까?’

무려 3411개월 16일 동안 조선은 일제의 압제 아래 신음했다. 마침내 식민 지배를 벗어난 그날,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을까? 그날 거리의 표정은 어땠을까

1945815일 평균 기온은 27.2도였다니 지금과 비교해보면 선선했겠다.

하지만 바로 당일 날에 관한 자료를 보니 사람들은 해방된 사실도 대부분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 말 신문이라고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하나였는데, 그 신문은 일본의 전세(戰勢)가 기울고 있다는 소식도, 마침내 백기를 들었단 사실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물론 항일 선각자, 민족의 지도자들은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방은 소리 없이 왔고, 해방과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더 기구한 조국의 운명도 가늠하지 못한 채 맞이하게 된다.   

 

‘824, 수천명의 조신인을 태운 광복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침몰했다 

824일 일본 교토의 한 군항에서 우키시마호가 큰 굉음과 함께 두 동강이 난 채 침몰했다. 이 배에는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려던 재일 조선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 일본은 사망자가 500여 명이라고 밝혔을 뿐 탑승자 명단과 사고 경위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4, 일본 외무성 기록으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다

1953년 일본의 문서에는 총 3735명이 타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은 총 8000여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이 배에 폭발물이 실린 정황을 기록한 일본 방위청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참혹한 역사를 담은 영화 '우키시마호'20199월 개봉,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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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29호(2019.08)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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