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시인들이 젊음의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린 청춘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비탄에 잠기게 하죠.
그래서 도리언 그레이는 아름다운 자신의 초상화를 보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늙어 무섭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겠지. 그런데 이 그림은 항상 젊은 상태로 남을 것이 아닌가. (…)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줄 텐데! 내 영혼이라도 내줄 용의가 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도리언의 이런 소원은 현실이 됩니다. 도리언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는 대신 그의 초상화와 영혼이 늙고 추해져가기 시작하지요.
도리언, 예술 속에만 머물고자 한
도리언은 청춘이라는 시기에 몰입해 욕망이 이끄는 대로 쾌락을 좇으며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매일같이 밤거리를 떠돌던 그는 어느 날 지저분한 극장에서 아름다운 연기를 선보이던 시빌 베인과 사랑에 빠지고 이내 혼인을 약속하지요.
그러나 영원히 함께하리라는 다짐도 잠시, 혼인을 약속한 뒤 돌연 무능한 연기자처럼 변해버린 시빌의 모습에 도리언은 크게 실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시빌로서는 연기가 형편없어질 수밖에 없던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시빌에게는 이제 도리언과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고 도리언과의 삶만이 진정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이었는데,
혼인을 약속한 뒤에는 지금까지 잘 해온 연기가 거짓처럼 공허하게 느껴져서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이죠
도리언은 그녀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가 사랑했던 것은 시빌이 아니라 그녀가 연기하는 모습뿐이었던 겁니다.
그는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꿈속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죠.
도리언 그레이, 환상 속에서 살았던
도리언과 시빌은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둘의 사랑은 정말 달랐습니다.
시빌은 예술이 환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에 도리언을 사랑했던 반면,
도리언은 시빌이 예술이라는 환영에 실체를 부여하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런 도리언의 사랑은 상대방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현실의 복잡성을 무시한 채 현실에서 무작정 예술적 이상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작중 도리언은 마치 자신의 삶이 꿈이고 자신이 예술작품의 주인공인 양 행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영혼을 빼앗기며 인간성을 상실하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릅니다.
이는 예술작품인 자신의 초상과 자신의 실제 삶을 동일시하면서 생겨난 비극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