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문학] 학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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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단지 외모가 학살자와 닮았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진정한 야수성을 표현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학살자> 중에서 

 

우리는 수많은 예술 작품을 소비한다. 광고를 보는 것, 영화를 보는 것, 한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 한 점의 그림을 보는 것, 늘 흐르는 수많은 영상들을 감상하는 것 등.

그리고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 곳곳에 소비자들의 구미에 꼭 맞는 숱한 장치들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마치 덫에 걸리듯 그 장치에 취해 쉽게 카타르시스에 이른다.

 

대개 이 장치는 사실을 부풀려 만들어낸 하나의 허상일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관상>에서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이 큰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과연 이정재가 열연한 수양대군은 진짜 수양대군에 얼마나 근접했을까

과장된 표정, 목소리로 만들어낸 가짜 수양대군을 통해 사람들은 수양대군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허상이 만들어낸 앎은 오히려 진짜 수양대군을 아는 길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알게 된 수양대군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또 무엇일까?

 

브레히트의 <학살자>에는 진짜 무라토프 총독이 와서 가짜 무라토프 총독을 연기하려고 애쓴다

이 간결한 에피소드를 통해 브레히트는 사실을 부풀려 만들어낸 허상이 얼마나 진실을 가리는지 예술 창작자들에게 묻는다

사실 이 물음은 브레히트 당시보다도 상업적 영상들이 넘쳐나는 오늘날 더 절실한 울림을 갖는다

 



전형 혹은 선입견의 어리석음

<학살자>는 때로 선입견 때문에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 등을 잘못 인식하게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동시에 영화와 같은 예술 작품이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학살자>의 제작진은 학살자의 이미지를 과장되게 표현하려 한다

사실 우리를 학살자를 포악하고 잔인하며 야수 같은 이미지로 떠올린다. 정말 그럴까

소설에 나오는 학살자 무라토프 총독은 2차대전 발발 전에 수많은 유대인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를 직접 본 적이 있는 유대인들은 그에게서 관료의 모습을 봤을 뿐이다.

 

그들이(유대인들이) 실제로 무라토프를 대면했을 당시 그가 보여준 습관적이고 관료적인 행동은 그들에게 끔찍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물론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일을 관료적 혹은 사무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라토프의 잔혹한 학살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달리 보면 무라토프가 그런 학살을 저지른 것은 그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관료로서 행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볼 수도 있다

무라토프의 행동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정말 학살자로서 전형적인 인물이었는지 전형은 언제나 전형일 수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혹은 거리두기

1919년부터 한동안 독일에서는 표현주의 영화가 큰 인기를 모았다.

표현주의란 20세기에 전개된  예술 운동으로, 작가 개인의 주관적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표현주의는 회화에서 시작되어 다른 조형 예술과 문학, 연극, 영화, 음악에까지 퍼져나갔다. 그 중 표현주의 영화는 인간 내면을 영상으로 표현하려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표현주의 영화는 상상을 통해 허구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표현주의 영화의 성향은 자극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상업주의적 예술과 잘 맞아떨어졌다.

 

브레히트가 <학살자>를 쓴 것은 1928. 관련 학자들은 이 작품이 표현주의 영화, 특히 상업영화를 비판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브레히트는 관객들이 연극의 내용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거리를 두면서 객관적이며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브레히트가 생각해낸 서사기법이 소외효과(Der Verfremdungseffect). ‘낯설게 하기’ ‘거리두기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

브레히트는 관객이 연극 속 사건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살펴보며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여러 장치를 활용해 관객이 연극 내용에 몰입하지 않도록 했다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27호(2019.06)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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