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권의 소설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고작 114쪽 분량의 짧은 소설이 2022년 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는데요, 지금까지의 후보작 중 가장 짧은 분량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 2021년 발표한 네 번째 작품으로, 문학계 거장으로 자국에서는 명성이 자자했던 키건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여파가 현재 한국에까지 전해졌어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고 난 느낌은 꼭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 장편이라고 하기엔 좀 짧은 분량이지만 ‘단어 하나 낭비하지 않는 작가’라는 평가처럼 정말 무엇 하나 비는 곳 없이 완전한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문학 작품은 꼭 겨울날의 맑은 개울물처럼 읽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투명하게 비춰보게 만듭니다. 1980년대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석탄 상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빌 펄롱’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장에서 중대한 선택에 맞닥뜨린 펄롱을 만나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 우리가 삶에서 마주한 수많은 선택과 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1985년, 아일랜드 소도시 ‘뉴로스’는…
소설의 배경인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는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여요. 추운 겨울이 찾아왔고,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데다가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은 점점 길어지고, 전기세를 못 낸 사람들이 집에서 몸에 담요를 꽁꽁 두르고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장수로 아내와 다섯 명의 딸과 살고 있어요. 석탄 업장을 직접 운영하는 그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
고사는 데 모자라지 않을 만큼은 돈을 벌고 있어요.
펄롱은 아주 섬세한 사람이에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왁자하게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왜 본인은 저렇게 다른 남자들처럼 단순한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 반문해 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펄롱은 평화로운 일상에 존재하는 삶의 미묘한 긴장 상태를 누구보다 기민하게 느낍니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어느 새벽, 펄롱은 홀로 아래층으로 내려와 차를 마시며 생각합니다.
시 외곽에서 본 풍경,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는 광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운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펄롱은 늘 연민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뭔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해요. 반면 아내 아일린은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 펄롱이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고 돈 몇 푼이라도 쥐여주는 걸 보면, 아일린은 옆에서 ‘당신은 마음이 너무 약해!’라고 나무라는 식이죠.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다섯 딸과 가족을 아주 사랑하고,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
에요.
펄롱, 수녀원 세탁소의 어린 소녀들을 보고
아픈 과거를 겪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더욱 온정적인 경우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펄롱도 그런지 모릅니다. 펄롱의 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부유한 미시즈 윌슨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다 펄롱을 임신했고, 어머니의 가족들은 모두 그녀를 외면했지만, 미시즈 윌슨은 어머니와 펄롱을 그 집에서 지내게 해주었어요. 어려움은 있었지만 덕분에 최소한의 안전망 속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날 수 있었죠.
펄롱은 일찍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자신과 어머니를 거둬준 미시즈 윌슨을 자주 떠올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은 채 살아갑니다. 어려서부터 소위 말하는 ‘정상 가정’ 바깥에서 자라오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출생과 존재에 의문을 가졌던 것이 펄롱의 따뜻하고 감상적인 기질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던 어느 날, 펄롱에게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12월, 연말이라 석탄 주문이 밀려 매우 바쁘게 보내고 있었어요. 펄롱은 지역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가게 됩니다.로마 가톨릭 교단과 연결된 수녀원은 당시 아일랜드 사회에서 큰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어요.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으니까요. 뉴로스 사람들도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수녀원과 관계를 맺고 있었죠. 수녀원에서는 고아, 미혼모, 매춘부 등 젊은 여성들을 거두어 지내도록 했는데,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돌긴 했지만, 다들 좋은 일을 하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죠.
석탄 배달을 온 펄롱은 수녀원 석탄 창고에서 아무렇게나 방치된 한 소녀를 발견해요. 소녀는 두려움에 휩싸인 눈으로 펄롱을 바라봅니다. 펄롱은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소녀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다만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 달라고 펄롱에게 당부할 뿐이죠. 펄롱은 소녀를 수녀원에 데리고 돌아갔는데, 수녀들이 무언가 대충 이야기를 얼버무리려고 한다는 눈치를 받습니다. 넝마 같은 차림의, 아무렇게나 머리가 잘린 채 노예처럼 일하는 소녀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나고 있는 걸까요?
펄롱은 아이의 안부를 물어달라는 소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수녀원을 빠져나옵니다. 집에 돌아와 수녀원의 소녀에 대해 아일린에게 얘기하지만, ‘안타깝지만 그건 우리 일이 아냐’라는 태도입니다. 펄롱은 그 어느 때보다 아일린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만약 그때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으면, 우리 어머니도 거기에 있었을 수 있었어.”
평온한 펄롱의 세계는 점점 혼란스러워집니다.
소설 내내 작가는 빌 펄롱이라는 인물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내포된 불안을 한 줌씩 뿌리며 하나의 형상을 빚어 왔습니다. 이제 그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펄롱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과연 앞으로 펄롱은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그의 눈앞에 놓인 너무나 명백하고 거대한 불의에 그는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게 될까요?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84호(2024.03)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