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시사포커스] 편히 쉬소서! 김복동 여성인권·평화운동가 영면永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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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쉬소서!

김복동 여성인권·평화운동가 영면永眠

 

일본군‘위안부’에 강제 동원된 피해·생존자이자, 

여성인권·평화운동가로 힘써온 김복동 할머니가 2019년 1월 2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는데요. 

2월 1일 발인까지 약 6000여 명의 시민들이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마지막 배웅을 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린 뒤, 

세계 곳곳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웠습니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발족하는가 하면, 

장학재단을 세워 전쟁·분쟁지역 청소년들과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영면, 이어진 곽예남 할머니의 영면으로 현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중 스물 두 분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의 조속한 뉘우침과 진심 어린 배상이 시급합니다. 

<유레카> 모든 독자를 대표해 김복동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 김복동 

김복동 할머니는 1926년 4월 19일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일본군에 끌려간 건 만 14세 때. 일본군은 김복동의 집에 찾아와 군복 만드는 공장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3년만 공장에서 일하면 된다고, 따라오지 않으면 온 식구들을 추방하고 재산도 몰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김복동은 일본군을 따라 나섰고 중국 광둥에 도착했다.

8년간 ‘위안부’ 생활이 지속됐다. 해방 이후 40년이 넘도록 그때의 기억을 홀로 마음에 품고 살았다. 김복동이 피해 경험, 생존의 기억을 입 밖에 낸 것은 1992년, 66세가 되어서다. ‘위안부’ 피해 사실을 정부에 알린 김복동은 이듬해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일본군의 전시 성폭력 실태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증언했다. 

이후 본격적인 여성인권운동가·평화운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며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에 힘써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발족해 세계 곳곳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을 도왔다. 김복동은 평생 모은 돈 5000만 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했는데, 그 돈으로 ‘김복동의 희망’ 장학재단이 세워졌다. 전쟁·분쟁지역 청소년들과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재단이다. 김 할머니는 2018년 11월 22일, 죽음을 두 달 남짓 앞두고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장학재단에 3000만 원을 더 기부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 공익사단법인 정이 선정한 ‘바른의인상’을 수상했고,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 명단에 올랐다.

 



그 뜻을 이어 받아… 

일본의 사과를 받는 그날까지

2019년 1월 28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여성인권·평화운동가로 살아온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4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수요일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가 열린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다. 김 할머니의 별세 후 1월 30일 수요집회에는 평소의 두 배 가량 인원이 참여했다.

연세대학교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특1호실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이 치러졌다. 장례식장에도 조문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들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김 할머니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식장을 찾은 시민들은 묵념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김 할머니의 임종 당시 함께 자리하고 있던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김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말했다고 전했다.

발인을 마치고 운구 차량은 김 할머니가 생전 머물던 마포구 연남동을 향했다. 김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길원옥 할머니는 영정사진을 어루만지며 김 할머니를 추모했다.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을 지나 수요집회가 열리는 옛 일본대사관에 도착했다. 김 할머니의 영결식에는 시민 1000여 명이 함께했다. 시민들은 향년 94세로 잠든 김 할머니를 추모하며 94개의 만장과 노란 나비 막대를 들었다.

김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51명의 일본군‘위안부’ 생존자가 잠들어있는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되었다. 김 할머니의 분향소는 성남, 거제, 여수 등 전국 곳곳과 미국, 일본, 호주 등지에 차려졌고, 일본 도쿄에서는 추모 집회도 열렸다. 한편, 김 할머니의 영면으로 현재(2019년 2월 1일) 한국의 일본군성노예제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삶과 닮은 장례

마지막까지 ‘김복동 할머니’ 다웠다고, 주변인들은 입을 모은다. 

김 할머니는 전 재산을 아낌없이 전시 피해 여성, 재일 조선인 학생 등을 위해 내놓았다. 김 할머니의 통장에 남은 돈은 160만 원. 시민장을 치르는 데는 1억 원이 넘게 들었다. 다행히 조의금과 성금으로 2억이 넘게 모였다.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 시민장례추진위원회는 조의금을 각종 시민사회단체와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김 할머니가 평생을 나누며, 인권운동에 힘쓰며 살아왔기에 그 뜻을 이어가고자 한 결정이다.

기부금은 정의기억연대와 인연을 맺어왔거나, 김 할머니가 평소 관심을 가져온 여성·인권·평화·노동·통일 관련 단체들에 전달된다. ‘미투 운동’ ‘강정사람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이 그들이다. 더불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대학생 자녀 중 10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오는 4월 17일 각 200만 원씩 ‘김복동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김 할머니의 생애와 꼭 닮은 마지막 길이다.

  

※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24호(2019.03)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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