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키워드리포트] 한국, 동성 동반자의 법적 권리 일부 최초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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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생각과 종종 분리되곤 한다. 한국 사람의 백인에 대한 친절과 유색인종에 대한 친절을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재볼 수 있다면, 꽤 큰 차이가 날 것이다. 

말과 생각으로는 세상의 혐오들에 반대하지만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혐오적 태도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혐오적 행동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아도 자신 안의 편견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은 분명 동성애 차별에 반대하는데 막상 동성애자를 대면하게 되면 편하지 않은, 미묘한 감정들이 꿈틀거린다. 이 감정들은 편견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한국사회는 동성애 수용성이 낮지만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속도감있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20대 청년층의 경우 다른 세대에 비해 동성애 수용성이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사회 전체적인 분위리를 보면, 동성애 혐오와 편견의 벽이 여전히 높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행위’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전혀 해를 입히지 않으며 그런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동성애자에 대한 도덕적 혐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의 보수적인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2003년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을 계기로 설교와 성명문 등을 통해 동성애자들에 대한 부정과 혐오를 주도하고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만들어가고 있다.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해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최초 인정

얼마 전 법원이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것은, 동성애와 관련한 법적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뜻깊은 판결이었다. 

2019년 동성 커플 소성욱 씨는 김용민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아무런 법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결혼이었다. 2020년 소 씨가 건강 문제로 퇴사하면서 소 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으로부터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았다. 국민건강보험은 회사에 속한 직장 가입자,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와 같은 지역 가입자로 나눠 보험료를 부과한다. 직장 가입자의 수입으로 생활을 해나가는 가족은 ‘피부양자’로 보고, 보험료를 안 내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공단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서 법적인 부부가 아닌 사실혼의 경우,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한다.

두 사람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소 씨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단 소식을 알렸는데, 인터뷰 후 두 시간여 만에 소 씨의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당했다. 공단은 ‘행정 처리상의 실수’였다며, 소 씨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했고, 그가 피부양자로 인정받았던 기간 동안 내지 않았던 보험료도 부과했다. 

이에 소 씨는 2021년 2월, “동성인 배우자도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해달라”며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에서는 우리 법이 말하는 사실혼은 남녀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하고 있으며 이성과 동성의 결합을 달리 취급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 원칙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패소와 승소를 거듭하며 장장 3년 반을 끌었다. 그러다 지난 7월 18일 대법원에서 소 씨의 승소를 확정,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다. 국내에서 ‘동성 동반자’의 법적 권리를 일부나마 인정받게 된 첫 사례다. 공단이 사실혼 관계의 이성 동반자는 피부양자로 인정하면서 동성 동반자는 제외한 건 ‘헌법상의 평등원칙을 위반한 차별’이라는 주장에 대해 ‘차별’이라고 인정했다. 

피고가 직장가입자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 즉 이성 동반자와 달리 동성 동반자인 원고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고 이 사건 처분을 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원고에게 불이익을 주어 그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별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다._대법원 2024. 7. 18. 선고 2023두36800 전원합의체 판결 중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찾기 위한 첫 걸음

국민건강보험은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다. 그리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고 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대법원은 피부양자 제도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니 성별과 무관하게,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면 차별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번 판결은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회보장 제도에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또한 이번 판결에는 국민건강보험법의 특수성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건강보험제도의 경우 ‘피부양자’ 자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법원의 해석과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외에 다른 사회보장 법령(국민연금법, 사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은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자로 피부양자를 명시하고 있어서 동성 커플이 보호받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성소수자, 나아가 소수자 평등에 한발 더 다가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023년 2월에 있었던 2심 재판부에서는 이들 동성커플의 손을 들어준 바 있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게 이어져 온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국제 사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며 소수자 보호를 위한 법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전통적인 가족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에서조차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못박았다. 또한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을 근거로 동성 부부들이 다양한 법적 권리를 찾기 위한 소송들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90호(2024.09)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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