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 키워드리포트] 낙태, 초기 인류부터 겪던 문제, 여전히 논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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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통틀어 낙태 문제처럼 역사 이래 지금까지 논쟁이 계속되는 이슈는 많지 않다. 더군다나 논쟁의 열기가 한결같이 뜨겁게 유지되는 경우도 드물다. 오는 11월에 대선을 치르는 미국에서는 낙태 금지 이슈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 낙태금지법이 부활하면서 두 대선 후보의 낙태 관련 입장이 승패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낙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함께 했다. 그러나 수렵과 채집에 의존해 살아가던 구석기 시대의 인류에게 낙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존 자체의 엄중함이 무엇보다 우선했기 때문에 낙태와 영아살해가 아무렇지도 않게, 빈번히 일어났다.  

낙태 문제가 지금처럼 법적인 개념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농경사회로 접어들며 잉여생산물이 축적되고 사유재산이 발생하면서부터였다. 

"농경사회에 이르자, “정착-농경-잉여생산물 축적-사유재산제 성립을 거쳐 계급사회의 형성에 이르자, 모든 생산활동이 동등하게 취급되던 평등한 씨족사회는 남성 가장 중심의 부계사회로 변화되었다. 또한 유전자검사가 없던 시절, 내 사유재산을 내 자식에게 확실히 상속시키기 위해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법은 비로소 낙태를 법적 개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_<낙태의 역사, 인류의 역사>, 전성훈




예기치 못한 임신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인류는 이렇게 까마득히 오래전부터 낙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대부분의) 동물의 교미가 출산이 목적인 반면, 인간의 성 행위는 출산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임신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인류는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피임 방법을 시도해 왔지만, 완벽하게 성공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여전히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피임의 실패로 예기치 못한 임신이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낙태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런저런 약초를 배합해 질 속에 넣으면 낙태가 된다는 내용인데, 약초 외에 질이나 자궁에 물건을 넣거나, 충격을 주는 방법, 마사지, 주술을 했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고대도시 우르의 고문서에는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의 딸을 폭행해 유산시키면 딸의 아버지에게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 상세히 적혀 있다. 유산 혹은 낙태와 관련해 법적인 개념이 있긴 했지만, 일종의 사유재산 침해로 간주했다. 2700여년 전의 고대 중국의 문서에도 낙태를 위해 어떤 약을 사용해야 하는지 자세히 적어놓은 기록이 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낙태가 성행했는데, 당시에는 아버지의 허락만 있으면 아무 제약 없이 낙태할 수 있었다. 

물론 고대에는 외과 수술이 발전하지 못해 외과적 낙태 수술이 행해지지는 않았고, 약초를 비롯한 다양한 혼합물로 유산을 유도하는 일은 다반사였으며, 배를 치거나 낭떠러지에서 구르는 등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 외과적인 수술 못지 않게 임신한 여성의 생명을 위협했다. 정밀하게 약물의 배합을 하지 못해서 혹은 독성 있는 약초를 사용해서, 물리적인 힘을 가해서  낙태를 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리하자면 고대 국가들은 낙태에 대해 법적인 제재를 하거나, 도덕적 비난은 거의 없었지만, 임신한 여성들은 갖가지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낙태의 위험성이 크다고 무조건 출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성장 기간이 너무 길어서 양육의 부담이 매우 크다. 초기 인류사회, 고대사회 모두 생산력이 높지 않았던 때라 공동체나 가족들은 양육의 부담을 크게 느꼈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 풍요를 이뤘지만, 경쟁의 칼날이 더할나위 없이 날카로워진 현대사회에 오면서 양육의 문제는 다른 의미로 한층 더 부담스러워졌다. 한국은 합계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다. 한국사회의 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육을 위한 환경적·물질적 조건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고 까다롭고,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임기 청년 대다수가 출산을 포기해, 심각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사회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성행위, 피임의 실패, 예기치 않은 임신.’ 

이 일련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이런 표현이 무색하지만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낙태와 관련한 문제를 성 도덕적 관념의 부재,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 때문이라는 비판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가임기 여성이면 누구나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이 일들로 예기치 못한 임신을하게 되고, 불안을 동반한 신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할 상황에 빠진다. 임신은 남성과 여성의 성 행위의 결과다. 낙태를 절반의 여성이 위험하게 지고 가야 할 짐으로 내버려둬야 할까.

낙태 논쟁은 절대로 논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구성원 절반인 여성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현실적이고 정확한 해결 방안을 구체적인 법률로 내놓아야 한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89호(2024.08)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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