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가장 가치 없으나 모든 것을 지배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은 돈에서 나온다. 모두 돈을 추구하고, 숭배하며, 돈에 미쳐 살아간다. 지위도, 명예도, 핏줄도 돈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 돈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비싼 게 좋은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돈의 양이나 돈의 크기가 곧 어떤 것의 가치를 나타내는 건 아니다. 목숨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기에 절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자기 목숨과 바꿀 사람은 없다. 인간은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좀처럼 돈과 바꾸지 않는다. 부모나 아이, 친구나 연인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인간 말종은 극히 드물다.
게다가 돈 자체는 아무 가치도 없다. 구리나 종이나 숫자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돈의 철학》에서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오히려 세상 모든 것과 교환할 수 있기에 돈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없는 사물이라고 주장한다. 돈을 다른 모든 사물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은 아무런 실체적 가치도 없어서 누구나 기꺼이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장 가치 없는 것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이것이 자본주의이다. 인간 전체가 상인이 되어 이윤을 추구하고, 돈의 환상에 취해서 살아가는 세계인 것이다. 돈이 인류 사회의 중심에 놓여 정치 권력의 호위를 받고 종교의 찬양을 누린 일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권력이다. 어떤 소망이든 이루어 주는 마법의 지니 램프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를 살았던 ‘근대의 예언자’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돈은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틀린 것을 옳게, 천한 것을 귀하게, 늙은 것을 젊게, 비겁을 용맹으로 만든다(<아테네의 타이먼>).” 그러니 권력의 탄압도, 이념적 억압도 돈을 향한 탐욕을 말릴 수 없었다. 상인들은 사막의 길을 열어 비단을 나르고, 바다의 파도를 뚫고 향료를 운반해서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소설은 자본주의와 함께 발흥했다. 모든 소설은 돈을 둘러싼 탐욕의 이야기다. 세르반테스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학은 돈이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고,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탐구해 왔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돈》에서 말했다. “돈이, 황금이, 이 반짝이는 별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삶을 비춰 줄 것인가! 돈이란 인생 그 자체요! 돈을 없애 보시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거요, 아무것도!” 에밀 졸라는 오노레 드 발자크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뒤를 이어서 프랑스 근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루공과 마카르, 두 집안에 속하는 인물들 수십 명의 이야기를 추적한 연작 소설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물학적·사회적 조건이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려 했다. 루공-마카르 총서라 불리는 이 거대 기획은 《쟁탈전》 《목로주점》 《나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제르미날》 《작품》 《인간 짐승》 《돈》 등 1871년부터 1893년까지 발표된 작품 스무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돈에 대한 맹목적 추구, 붕괴하는 인간적 도리
《돈》은 19세기 프랑스 자본주의가 발흥하던 시기에 거세게 일어났던 파리 주식투자 열풍을 배경으로, 돈에 대한 탐욕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주인공은 투기의 귀재인 50대 은행가 아리스티드 사카르이다. 그는 돈에 대한 탐욕, 높은 지위에 대한 욕망, 몸이 녹을 듯한 향락욕에 몸부림치는 루공 집안 출신이다. 지방 소도시 플라상스 출신인 루공 집안은 초기 부르주아를 상징하는 집안으로, 돈과 권력을 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 무수하다.
《쟁탈전》에 이어 《돈》에서도 중심인물로 등장한 사카르는 루공 집안 출신답게 “맹금의 후각과 늑대의 식탐”을 지닌 인간, “사물과 사람을 녹여서 돈을 주조하는 인간”으로 불린다. 그는 사기, 부패, 조작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오직 돈만을 추구한다. 윤리나 도덕, 인간의 도리 따위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쟁탈전》은 사카르가 제2제국 시대에 있던 파리 재개발 계획1853~1870과 맞물린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부풀리다 끝내 파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후속편에 해당하는 《돈》은 사카르가 만국은행을 설립해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후 분식회계를 통해 주가를 조작해 인위적 거품을 부풀림으로써 막대한 부를 취하고, 자기 형 외젠을 포함한 수많은 이를 절망과 파탄으로 몰아넣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물론, 이번에도 사카르의 끝은 좋지 않다. 샴페인을 터뜨리는 순간, 경쟁자인 유대 은행가 군데르만의 반격을 받고 처참하게 몰락해서 범죄 혐의로 구속되었다 벨기에로 쫓겨나기 때문이다.
1882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위니옹 제네랄 은행의 주가 폭락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돈은 “인간을 부패와 중독에 빠뜨리고, 영혼을 메마르게 하며, 타인을 위한 선의, 애정, 사랑을 앗아가는” 촉매이다. 사카르가 일으킨 인위적 거품이 붕괴하자, 무일푼이 된 개미 투자자들은 빈민가로 내몰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비극에 떨어진다. “투기 광증 속에는 파괴적 효모, 모든 것을 썩히고 갉아먹으며 더없이 고귀하고 오만한 족속조차 인간 넝마, 시궁창 쓰레기로 만드는 파괴적 효모가 들어 있다.” 탐욕이 삶의 모든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잠재우고,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73호(2023.04)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