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와 무력감, 잉여 인간을 낳다
“저한테는 불행한 기질이 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자전적 장편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에 나오는 알렉산드로비치 페초린의 독백이다. 귀족 출신의 청년 장교인 페초린은 전도유망한 나이인데도 우울과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가슴 뛰는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쾌락도, 상류 사회의 세련된 미녀들도, 책 읽고 공부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일도, 전쟁터에 뛰어들어 무훈을 세우는 일도, 그의 마음에 있는 불행을 전혀 씻어내지 못한다. 쾌락은 혐오를 낳고, 사랑은 격분을 부르며, 학문은 넌더리를 일으킬 뿐이다. 심지어 죽음의 공포조차 지루함을 가져올 뿐이다.
페초린은 세상 무엇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어떤 일에도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목숨 걸고 뛰어들었던 일에서조차 쉽게 싫증을 느끼고, 몰입하다가 갑자기 허탈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페초린은 말한다.
“제겐 무엇이든지 모자라요. 저는 즐거움만큼이나 슬픔에도 쉽사리 길들여지고, 제 삶은 날마다 더더욱 공허해지는 겁니다.”
페초린의 가슴을 가득 메운 불행감을 러시아에서는 토스카Toska라고 한다. 불안, 향수, 우울, 우수, 지루함, 짜증 등 별다른 이유 없이 찾아오는 커다란 정신적 고통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걸려 보지 않은 사람은 토스카를 전혀 이해할 수 없으나, 일단 이 토스카에 사로잡히고 나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게 된다. 토스카는 인생에서 이룩해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거기에 도달할 수단을 갖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무력한 감정이다.
특히, 개인적인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인 여건 탓에 절대 그 일을 실현할 수 없을 때 토스카가 우리를 찾아온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중요하고 본질적인 건 하나도 이룰 수 없다면, 결국 인생 전체가 공허하고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잉여 인간’이라는 러시아 문학의 전형적 인간형은 이로부터 탄생했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71호(2023.02)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