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 특집 맛보기] ‘낙태’라는 용어, 적절하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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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 유산, 임신중절… 다 비슷한 말?

낙태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로 의미를 설명한다. ① ‘태아가 달이 차기 전에 죽어서 나옴’ ② 자연분만 시기 이전에 태아를 모체에서 분리하는 일. 둘다 유산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낙태를 다른 말로 유산이라고도 한다. 

유산은 자연유산과 인공유산으로 나뉘는데, 의학적인 시술 없이 임신 20주 이전에 임신이 종결되는 것은 자연유산이다. 인공유산은 임신 시기에 약물적 또는 수술적 방법으로 임신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수술을 해야 하는 이유에 따라서 치료적 유산과 선택적 유산으로 나눈다. 치료적 유산은 말 그대로 치료를 위한 것이고 선택적 유산은 인공유산, 또는 인공임신중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휘 해설이고, 사회적으로는, 자연분만이 이뤄지기 전에 태아를 인공적으로 제거하는 일로, 적법하게 의사의 주도로 이뤄지는 일도 포함되지만, 대개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임신중절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인다.  




● 한국여성민우회, 낙태가 아니라 ‘임신중지’라고 써야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올해 3월 7일, 여성이 임신을 중단하는 일을 ‘낙태’가 아닌 ‘임신중지’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그동안 미국 전역에서 낙태권 보장의 기반이 됐던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낙태권 침해의 우려를 촉발한 큰 사건이었다. 그러자 프랑스는 3월 4일, 세계 최초로 헌법에 ‘낙태권은 여성의 자유’임을 명시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는 여성의 권리가 후퇴하지 못하도록 개헌을 통해 헌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프랑스가 헌법에 낙태권 보장을 명시하자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앞다퉈 관련기사를 쏟아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국내 언론사들이 관련 기사들에서 대부분 ‘낙태 자유’ ‘낙태권’ ‘낙태할 자유’ 등 낙태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을 비판했다. ‘임신중지’라고 표현한 언론은 경향신문, 한겨레, SBS, 국민일보 등 소수였다. 

낙태에 관한 부정적 사회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언론이 ‘낙태’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 낙태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 이유?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낙태라는 용어를 ‘임신중지’나 ‘임신중단’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도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뜻 자체가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하고, 자연히 이 선택을 하는 당사자에게 태아의 생명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죄책감을 씌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임신중단을 선택한 이들을 무책임한 여성, 생명을 경시하는 태아살해범 같은 프레임으로 덮어씌우며 태아 보호를 위해 낙태를 강력히 규제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낙태’라는 말은 조선시대 형법에서부터 현재까지 ‘죄’라는 말과 붙어서 사용돼 부정적인 의미가 더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모자보건법에서는 ‘낙태’ 대신 ‘임신중절’이라는, 행위중심적인 단어를 쓰고, 의료계에서도  ‘임신중절’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낙태’라는 용어를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낙태라는 말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아지면서 낙태, 임신중지, 임신중단, 임신중절을 섞어 사용하게 됐다. 낙태라는 용어를 바꾸자는 주장에 대해 한편에서는 용어의 부정성에 집중하기보다 낙태에 대한 도덕적 낙인을 줄여나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몇해 전부터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불구자’ ‘살색’처럼 혐오와 차별을 담은 언어를 ‘장애인’ ‘연주황’으로 바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 사용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말이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낙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 또한 낙태에 대한 차별적 관점을 벗어나고자 하는 작은 걸음이 아닐까?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89호(2024.08)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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