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비문학] 《주변의 상실》 혼란의 시대, 자신을 방법으로 삼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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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색다른 방법

어지러운 시절이다.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좀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2022년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 대회를 통해 3연임을 확정함으로써 장기집권의 서막을 열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평택 빵 공장에서, 이태원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정치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남 탓과 변명만 일삼는다. 오늘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성별과 세대, 계급에 따라 격렬한 전쟁이 벌어진다. 어쩐지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인류학자 샹뱌오는 이 혼돈과 환멸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색다른 해결책을 제안한다. 바로 ‘자기 자신을 방법으로 삼기’다. 요즘 유행하는 ‘마음 챙김’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하여 주변에 대한 도경을 그리고,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샹뱌오의 책 《주변의 상실》은 자신을 방법으로 삼아 공부하고, 고민하고, 소통해온 한 인류학자의 여정이 담겨 있다. 샹뱌오가 나고 자란 원저우, 대학 시절을 보낸 베이징, 현재 교편을 잡고 있는 옥스퍼드에서 나눈 방담과 여러 인터뷰, 기고를 모았다. 

 

 

이념이 사라진 세계, 시스템에 갇히다

샹뱌오는 중국이 자유화와 경제개발에 나선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중국 중앙 텔레비전 CCTV의 다큐멘터리 <하상(河殤)>은 황하(黃河)와 대양(大洋)의 대비를 통해 중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많은 지식인이 누런 황하가 상징하는 중국의 낡은 전통을 벗어던지고 푸른 바다가 상징하는 서양의 자유와 과학,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비록 중국을 ‘서구화’하려던 이들의 노력은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실패하고 말았지만, 중국의 개혁 개방 드라이브는 그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중국이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샹뱌오는 개혁 개방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 회의적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던 시기는 G2(Group of 2), 미국과 중국의 자리에 오른 지금이 아닌 1950~60년대다. 인도와 ‘평화 5원칙’에 합의하고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를 개최하는 등 미국과 소련에 맞서는 ‘제3세계’의 리더로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비(非)서구의 단결과 평화, 번영을 추구한다는 공동의 이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수민족 자치구에 대한 태도도 달랐다. 티베트와 위구르에 파견된 한족 관리들은 가장 먼저 현지의 언어를 배웠다. 자신들의 이상을 억지로 주입하려 들지 않고, 현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득하고 토론하고자 했다. 

 

반면 오늘날 중국은 일종의 ‘이념 부재’ 상황이다. 이제 중국은 이념이 아닌 물자를 수출한다. 이념의 빈자리는 ‘경제주의’가 채운다. 국가는 더 이상 다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오직 경제발전의 가능성과 여부만을 묻는다. 샹바오는 이러한 경제주의가 ‘리추얼(Ritual, 의례)’에 의해 지탱된다고 지적하며, 이를 ‘리추얼 경제’ 혹은 ‘경제 리추얼’이라고 부른다. 리추얼을 통해 오직 경제만이 중요하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한편, 거금을 들여 리추얼을 준비하고 거행하는 과정이 하나의 경제 사이클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오직 경제만이 중요해진 세상에서, ‘사회’의 영역은 급격히 쪼그라든다. 지난 세기 인류는 ‘시장화된 사회’를 두려워했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상거래로 대체될까 걱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사회적인 시장’을 목도하고 있다. 시장이 곧 사회가 되었으며, 사회적 관계와 상거래의 구분 역시 무의미해졌다. ‘사회적인 시장’은 예전처럼 행위자 사이의 의사소통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이제 사회는 시스템, 다시 말해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폐쇄적인 순환 체계가 되었다. ‘사회인’에서 ‘시스템인’이 된 사람들에게 옛날처럼 자신의 이익을 주도적으로 ‘계산’할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알고리즘의 ‘계산’을 수동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 샹뱌오의 <주변의 상실>,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70(2023.01)에 실린 글입니다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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