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공자의 사상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공자가 살아있을 때는 어땠을까?
공자라면 모든 국가가 탐내는 인재였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공자는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치게 해줄 군주를 찾아 14년을 떠돌았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공자는 등용 준비생이었다.
공자의 ‘가상 이력서’를 보며 공자가 어떤 사람이고,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어땠는지 살펴보자.
[편집자 주]문명이 발생하고, 청동기가 사용되던 고대 중국. 당시 지배 세력은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상나라에서 주나라로 변해갔어. 시간이 흘러 주나라도 점차 세력이 약해지면서 기원전 770년 동쪽으로 도읍을 옮기게 돼. 주나라가 수도를 옮기자 왕을 도와 각 지역을 다스리던 제후들이 각자의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어. 이 시기를 춘추시대기원전 770~403년라고 하는데, 이때 나라의 수가 무려 100개가 넘었다고 해.한편 제후들은 서로 중국을 통일하겠다며 전쟁을 일삼았어. 춘추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가 시작될 무렵, 중국에는 10여 개의 나라만 남게 돼. 춘추시대가 얼마나 어지러웠는지 상상되지 않아? 공자는 사회가 이렇게 혼란할 때 태어난 사람이야. 사회 혼란은 전국시대까지도 계속되었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해 진나라를 세우며 춘추전국시대는 막을 내려.
본명 공구(孔丘)생년 기원전 551년 9월 28일
출생지 노나라 창평향 추읍취미 공부, 음악감상특기 제자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
경력사항-B.C. 532년(20세) 창고의 물건을 관리하는 말단 관리 위리가 됨.-B.C. 531년(21세) 소와 양을 관리하는 승전리가 됨.-B.C. 517년(35세) 정치적 혼란을 피해 제나라로 망명해 제나라의 관료 고소자의 가신이 됨.-B.C. 515년(37세) 노나라로 돌아옴.-B.C. 501년(51세) 중도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관리 중도재가 됨.-B.C. 500년(52세) 토목 공사를 담당하는 소사공으로 승진, 법을 집행하는 대사구(현재의 법무부 장관)로 승진-B.C. 499년(56세) 재상의 일을 겸직함.
Q, 성장 과정제 아버지는 노나라의 하급 무사 숙량흘이시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사 동료인 안양의 딸 안징재이십니다. 제가 세 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어머니께서 홀로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저는 어려서부터 천하고 보잘것없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의 가정교육은 엄격하여, 저는 어린 시절부터 제사 그릇을 차리고 예를 갖추는 것을 놀이로 여기며 자랄 정도로 예를 중시했습니다. 그 덕분에 15살이 되자 자연스럽게 학문에 뜻을 두게 되었습니다. 열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도 저처럼 충忠과 신信을 가진 사람은 있겠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저처럼 배움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저는 배우고 익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배운 것을 나누고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창고 물건과 가축을 관리하는 하급관리가 되었습니다. 비록 작은 역할이었지만 배우고 느낀 것을 실천해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질문할 줄 아는 자라면 누구나 그 정답을 내리고 익힌 바를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시 300편을 알고 있다고 해도 정치가로서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하고, 외교관으로서 능숙하게 군주를 대리하지 못한다면 그 시는 모두 쓸모없는 것입니다.
Q. 지원동기벼슬을 구해 도를 행하고자 지원했습니다. 저는 원래 노나라에서 대사구와 재상의 일을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관직에 오른 후 장례 절차를 제도화해 장례에 지나친 비용이 들지 않게 하고, 강자와 약자에게 다른 임무를 줘 모두가 제 역할을 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예로 나라를 돌보니 사람들은 길거리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줍지 않았고, 상인들은 물건을 속여 팔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주가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신하들의 무기를 거둬 약소국인 모국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그런데 이웃 국가인 제나라에서 노나라의 귀족 통치자를 타락시키기 위해 노래와 춤에 재능이 있는 악사 80명과 빠르게 잘 달리는 말 120필을 보내왔습니다. 이후 귀족 통치자들은 춤과 음악을 즐기기에 바빠 나라를 돌보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면 마땅히 관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보내야 하나 그러지 않는 등 예를 갖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노나라를 떠나 벼슬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67호(2022.10)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