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유형 생활로 바뀐 삶의 궤적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콜라이 고골, 이반 투르게네프, 레프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등과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1821년 모스크바에서 퇴역 의사인 아버지와 예술에 조예 깊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몰락 귀족이었으나 의사란 신분에서 알 수 있듯,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다.
페테르부르크의 육군 공병학교에 입학해 군인으로 출세를 꿈꾸던 도스토옙스키는 열여섯 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열아홉 살 때 아버지를 살인으로 잃으면서 급격히 문학으로 기울었다. 청년 도스토옙스키는 야심만만했다. 몇 해의 노력 끝에 스물다섯 살 때인 1846년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하자마자 ‘고골이 다시 태어났다’라는 문단의 격찬을 받았다.
당시 유럽은 ‘혁명의 시대’였다. 1775년 미국 독립 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한 엄청난 변혁의 물결이 유럽 전체를 휩쓸었다. 각국의 전제군주 체제가 타도되고, ‘자유, 평등, 우애’에 바탕을 둔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 변방에 있던 러시아만은 예외였다. 엄혹한 차르 체제 아래, 러시아는 오히려 개인 자유를 억압하면서 엄격한 신분제 사회를 유지하려 발버둥쳤다. 러시아에선 아무리 똑똑하고 부지런해도 소용없었다. 신분이 낮으면 고위직을 얻어서 출세할 수도, 돈을 모아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던 페테르부르크는 저주받은 도시이기도 했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생활고에 지쳐 병들어 죽어가는 하급 관료들과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이 빼앗기는 농노들의 피와 눈물로 건설되고 운영됐기 때문이었다.
불의는 정의의 힘으로 타도되고, 불공정은 평등의 저울로 시정되어야 했다. 자신감 넘쳤던 청년 도스토옙스키는 친구들과 함께 혁명의 물결에 몸을 던졌다. 외무부 관료 페트라셉스키가 주도한 공상적 사회주의자 모임에 참여해서 차르 체제를 비판하고 농노 해방을 꿈꾸었다. 1849년 새벽, 도스토옙스키는 동료들과 함께 전격적으로 체포돼 몇 달간의 조사 끝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책 읽고 공부만 했을 뿐 실제 반란을 모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건 내용에 비해 지나친 처벌이었다. 억울하고 비참한 심정으로, 공포에 떨면서 처형장에 섰던 도스토옙스키는 마음 깊숙이 큰 충격을 받았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차르의 사면 통보로 풀려난 그는 곧장 시베리아 옴스크 요새 감옥으로 유배됐다.
전체로 보면 이 사건은 사소한 일로도 죽일 수 있다는 경고를 통해 반항 세력을 억누르는 한편, 마지막 순간에 관용을 베풀어 자신의 자비를 알리려는 차르의 극적 정치 쇼에 불과했다. 그러나 죽음 체험에 이은 혹독한 유형(流刑) 생활은 한 청년 작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자전적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도스토옙스키는 고란치고프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서 그 변화의 과정을 생생히 기록했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66호(2022.09)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